선관위 신뢰, 시험대에 오르다
최근 발표된 ‘2025~26 유권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4.7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국가기관 중 헌법재판소(5.2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여서 너무나도 다행이고 감사하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크게 좋아만 할 사안은 아닌 듯하다.
선관위는 공직선거에 있어 심판자로서 정당 또는 후보자로부터 모두 존중과 신뢰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진보/보수 등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온도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기 유권자 패널조사에서도 이것이 극명하게 나타났는데, 민주당 지지층은 선관위에 대해 6.4점의 높은 신뢰도를 보였으나, 국민의힘 지지층은 2.6점으로 매우 낮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선거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선 결과에서 보듯이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뼈아픈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이 특정 팀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판정할 거이라는 생각 또는 확신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면 경기 중에도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결과에 쉽게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선관위에 적용하면 공직선거에 있어 선관위의 결정이나 행동이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에 대한 불복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법원과 검찰의 신뢰도가 3.8점, 3.2점이라고 해서 본인들의 역할을 못한다거나 결정이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많은 국민들이 그 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 기관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선관위 역시 마찬가지다. 절반이 신뢰를 못한다고 나머지 절반만 보고 갈 수 없을 것이고, 계속 지속되다 보면 불신이 전이(spill-over)되어 결과적으로 신뢰를 구축(crowd-out)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관위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도의 교과서 같은 말로는 극복이 어려울 것이다. 냉정하게 상황인식이 아직 덜되었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거야, 언젠가는 너희들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겠지" 정도의 막힌 태도로는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가장 중요한 명제는 "단일의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세상은 복수의 현실(multiple reality)이 존재하고 개인들은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관적 의미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사람들이 세상에 가진 의미, 해석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와 다른 생각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open-ended 로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그들의 배경과 맥락에 집중해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선관위 입장에서는 결국 불신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들어보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법은 어떻고 현실은 어떻고 같은 closed-ended 질문으로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설명보다는 경청, 논리보다는 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관위가 첫 직장이면서 오랜 기간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우리가 국민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정성, 투명성, 중립성 같은 레토릭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이 현실성 없는 내용이더라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지난하게 거침으로써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겹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다. 다만 세상 모든 일은 원래 다 어렵다. 그러나 과거에 헤매던 사람의 발자국을 훗날 사람들은 길이라 칭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