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팀 미라이'의 도전
팀 미라이(みらい), 낯선 이름일 것이다. 일본 정당 이름인데 우리나라 말로는 미래(未來)이다. 지난 2월 열린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신생 정당 '팀 미라이'가 비례대표 11석을 확보하며 원내에 진입했다. 창당 9개월 만의 일이다.
엔지니어, 컨설턴트, 스타트업 창업가 등 비정치권 전문직 출신으로 구성된 이 정당은 현재 일본 야당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평균 연령 39.7세로, 90년생인 안노 다카히로 Anno Takahiro (이하 안노)가 대표로 당을 이끌고 있다.
안노 대표는 도쿄대 공학부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입사 이후 비즈니스에 AI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여러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SF 작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치활동은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시작했는데 당시 5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2025년 참의원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팀 미라이’를 창당했다. 투표 결과 팀 미라이는 비례대표에서 2.6%의 득표율로 1석을 확보했으며 이로 인해 안노 본인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일본에서 법적 정당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①소속 국회의원이 5인 이상인 정치단체이거나, ②전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혹은 전회나 전전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의 전국 득표율이 2%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팀 미라이는 2025년 참의원 선거를 통해 법적으로 정당 요건을 충족하게 되었다. 정당 요건을 충족해야 중의원 선거 정견방송,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 정당교부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단체 입장에서는 제도권 정치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팀 미라이 정당은 "「지금」의 생활을 확실히 지원하면서, 「미래」를 향한 성장 투자로 아이들의 세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테크놀로지」로 행정·정치를 대담하게 개혁해 나갈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AI 전문가가 대표인 정당답게 '디지털 민주주의' 를 중심으로 기술을 통한 정치발전을 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팀 미라이 정책 매니페스토 2026)
안노 대표는 정치에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팀 미라이는 정당교부금을 사용해 정치 투명성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10명 규모의 「나가타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팀」을 발족했고 그 팀을 통해 정치자금의 흐름을 가시화하는 도구와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에 전달하는 플랫폼을 개발하였다.
팀 미라이는 현대 정당의 성격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에도 유권자와 함께 소통하는 형태의 정당들은 존재하였다. 하지만 팀 미라이는 인공지능 AI 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유권자와 실시간 소통하고 그들의 요청에 바로 대응하는 형태로 정당 운영을 바꾸려는 것이다. 디지털 민주주의를 통해 심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꿈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팀 미라이는 단순히 AI 덕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과 미국 등에서도 AI 의 발전 속도는 일본에 뒤질 바는 아니다. 따라서 일본에서 팀 미라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요인은 일본에서는 일정 수준의 득표율이나 의석만 확보하면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지역 기반 정당 설립도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개방성은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팀 미라이는 바로 그 조그만 틈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한국은 구조적 개방성이 부족하다. 한국 정당법은 정당설립 요건으로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5개 이상의 시도당, 그리고 각 시도당 당원 수 1,000명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법정 요건으로 지역정당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팀 미라이의 경우 2025년 10월 기준 전체 당원 수가 1,394명에 머물고 있다. 한국 기준이었으면 아무리 국민들의 지지가 높더라도 창당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팀 미라이는 일본의 완화된 정당 설립 요건 덕분에 전국 조직과 대규모 자금 없이도 정치 참여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전문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이는 방식으로 빠르게 조직화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 정치는 강력한 양당 구조가 확립되어 있다. 거대 양당에 유리하게 짜인 선거제도, 정치자금제도 등이 새로운 정당의 등장과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첫째,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뒤베르제의 법칙 Duverger's Law 에 따르면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국회의원 의석 총 300석 중 비례대표 의석 수는 46석으로 제한되어 있어 소규모 정당의 국회 진입이 어렵다. 셋째,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15% 이상 득표해야 전액 보전해주고 있어(10% 이상 반액 보전) 정치 신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넷째, 국고보조금 배분 기준도 거대 양당에 유리하게 규정되어 있어 80~90%를 양당에 배분하고 있다. 다섯째, TV 방송토론에 있어서도 초청 대상은 거대 정당으로 제한하고 있다.
신제도론 new institutionalism 은 행태주의와 구제도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등장한 이론으로, 사회 현상을 개인의 행동이 아닌 제도의 역할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분석하는 이론이다. 퍼트남(Putnam)에 따르면 신제도론의 핵심 명제 중 하나는 “제도가 정치를 구조화한다(Institutions shape politics)”는 것이다. 이는 공식적인 제도들이 정치, 정치인, 정치적 행동 등을 변화시키고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한국의 각종 정치제도들은 단순한 게임의 규칙이라기보다 정치적 행동을 구조화하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 온 제도들의 집합일 것이다.
제도는 기회를 만들기도 막기도 한다. 일본의 제도는 팀 미라이에게 기회를 제공해 준 반면, 한국의 제도는 가능성 있는 정치 신인들의 기회, 그리고 AI 와 같은 기술의 정치 영역 내 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다면 작은 제도의 차이가 두 나라의 정치지형에 큰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에 진입하려면 조직, 자금, 인맥이 필수적이다.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원내에 진입하기 어렵다. 그 결과 한국에는 팀 미라이처럼 AI 를 기반으로 기존 정치를 바꾸어 보겠다는 강력한 미래 비전을 가진 원내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기술, 청년, 미래에 대한 화두가 주변에만 머물고 있는 이유도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서일 것이다.
과거 1988년 13대 총선 결과 집권당인 민정당(43.14%)이 과반 의석에 못 미쳐 DJ 평민당(23.75%), YS 통일민주당(20.07%), JP 공화당(11.70%) 등 여소야대의 ‘4당 분립체제’가 등장했다. 대통령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려 해도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했다. 다당제가 협치를 견인한 중요한 사례이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일본 정치에서 가장 진보적인 팀 미라이가 나온 반면, 다이내믹한 변화를 보여왔던 한국에서 아예 그런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다고 할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변되는 반도체 산업은 세계 제일을 달리고 있지만 정치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기술 개발이 아니라 구조 변화이고, 따라서 미래를 고민하는 제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