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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로마의 선거 이야기

    고대 로마 왕정과 공화정 운영원리의 핵심에 “선거”가 있었다는 것은 지금 시각으로 보면 꽤 낯설다. 일반적으로 선거는 현대의 문법이지 고대의 문법은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타국에서 이주한 사람이지만, 타국인이 로마 왕이 된 선례가 있다. 처자와 함께 전 재산을 가지고 로마에 왔으니까, 이 로마에 뼈를 묻을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나이도 책임 있는 공직에 앉기에 적당하고, 선왕의 신뢰도 두터웠고, 로마의 신들을 공경하고 로마법을 존중하는 점에서도 남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 <로마인 이야기 1> 중에서

    위 내용은 고대 로마의 제5대 왕이었던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가 선왕이 죽은 뒤 스스로 왕에 입후보하여 선거운동 과정에서 한 발언이다. 오늘날 선거에서 후보자가 했다고 해도 전혀 손색없는 발언을 2600년 전에 했다고 하니 선거운동의 역사가 그리 짧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아래의 연설과 비교해 보자.

    제 아버지는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국인 유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염소를 치며 자랐고, 양철 지붕의 판잣집 학교에 다녔습니다. … 각고의 노력과 끈기로 제 아버지는 마법 같은 곳, 즉 이전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자유와 기회의 등불로 여겨져 온 미국에서 공부할 장학금을 얻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 그들은 관용적인 미국에서는 이름이 성공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믿으며, 제게 아프리카식 이름 버락, 즉 “축복받은 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 저는 제 이야기가 더 큰 미국의 이야기의 일부임을 알고, 제 이전에 온 모든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지구상 어떤 다른 나라에서도 제 이야기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조기에 충성을 맹세하고, 우리 모두는 미합중국을 지킵니다.

    – <2004년 민주당 전국 전당대회 기조연설> 중에서

    위 내용은 미합중국 44대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전당대회 기조연설 중 일부이다. 나는 외부인이지만 이 공동체를 존중하며 그로부터 받은 기회를 통해 기여하고 싶다는 논리구조는 타르퀴니우스와 동일하다. 선거에서 이기고자 하는 욕망은 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듯하다.

    <로마사>를 쓴 리비우스에 따르면, 타르퀴니우스는 왕으로 선출되기 위해 로마 전역에서 연설을 하고 자기에게 표를 달라고 시민들을 설득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민회는 타르퀴니우스를 압도적 다수로 왕으로 선출했고 원로원도 이견없이 이를 승인했다. 로마의 제5대 왕이 된 타르퀴니우스는 37년 동안 로마의 세력권을 확장시키고 시민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시켰다고 하니 그의 공약이 그리 헛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로마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최고제사장에 입후보한 후 선거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로마는 합동 연설회 같은 공식적 선거운동 기회가 없었기에 주로 아래의 네 가지 선거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1. 살루타토레스 : 가정 방문이다. 선거운동원이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누구에게 표를 달라고 부탁한다.
    2. 아섹타토레스 : 유권자들이 포로 로마노나 시장 같은 데로 일하러 갈 때, 그들과 동행하면서 설득하는 운동원을 말한다.
    3. 레둑토레스 : 아섹타토레스가 일하러 가는 유권자를 설득하는 사람이라면, 레둑토레스는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유권자를 따라가면서 설득하는 사람을 말한다. 도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당한 시민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설득하는 운동원이다.
    4. 노멘클라토레스 : 남에게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노려서 설득하는 운동원을 말한다.

    이 같은 선거운동 방식은 카이사르만의 독창적인 방법은 아니고 기원전 63년도 집정관에 출마한 키케로도 똑같은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했었다고 한다.

    다시 타르퀴니우스로 돌아오면, 그는 왕이 되자마자 개국 이래 줄곧 100명이었던 원로원 의원수를 200명으로 늘렸다. 원로원 의원은 오직 왕이 지명할 수 있었기에 그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원로원 의원으로 지명하여 자신의 권력 확립에 힘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중의 지지로 왕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위험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 역시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최고 권력자들이 권력 유지 또는 확립을 위하여 하는 오늘날의 행보와 비슷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6년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후 70세 이상 대법관 1명당 추가로 1명을 임명할 수 있도록 최대 6명까지 대법관을 늘리는 법안을 제안했다. 루스벨트의 의도는 대법원의 이념적 균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꿔 자신의 뉴딜정책 법안에 대한 위헌 판결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를 “법원 채우기 계획(Court-Packing Plan)”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여야를 막론하고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오랜 논쟁 끝에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안이 논의되는 사이 대법관 오언 로버츠(Owen Roberts)가 뉴딜 지지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보수 대법관 한 명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후 뉴딜 법안은 더 이상 위헌 판결을 받지 않았다.

     Federal Judicial Center 사이트 내용 중에서

    로마의 제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군제 개혁을 했는데, 사실상 이것은 세제 개혁이자 동시에 선거제도의 개혁이었다. 그는 군역(軍役), 세금, 투표권을 하나로 연결했는데,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다한 사람을 시민으로 인정하여 투표권을 인정해 준 것이다. 다시 말해, 로마 시민의 권리를 의무 이행과 밀접하게 결합하여 경제력에 따라 군사적 책임을 지고 그에 비례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당시 로마에서는 많은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많은 권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당연시되는 1인 1표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군단의 최소 단위인 백인대(centuria)를 투표 단위로 설정하여 각 백인대가 1표를 행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즉, 로마에서는 100명이 한 표를 갖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경제력이 높은 계층이 더 많은 백인대를 구성하게 되어 정치적 영향력 역시 더 크게 행사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투표할 때 백인대별로 내부적으로 의견을 통일하여 통일된 한 표를 행사하였겠지만, 실제로는 백인대를 국가에 제공할 의무를 가진 사람(경제력 높은 계층인 제1계급)이 그 백인대에 주어진 한 표를 행사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민회의 총투표수가 당시 193표였는데 제1계급이 일치단결하여 투표하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당시 로마는 민주정치가 아닌 과두정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군역-세금-투표권이 일치되었기에 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고, 로마의 왕정은 제7대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전제적 통치에 대한 반발로 붕괴되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별명인 수페르부스(superbus), 라틴어로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로 불렸었고 폭정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마지막으로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되었다.

    다만 공화정 체제에서도 선거는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왕을 선출하지는 않았지만 민회에서 임기 1년인 2명의 집정관을 매년 선출하였다. <로마사>에서 리비우스는 이에 대해 로마는 해마다 선거를 통해 뽑히는 자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개인보다는 법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는 어쩌면 선거가 단순한 지도자 선출을 넘어 법에 의해 국가권력의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집정관은 공화정 로마의 최고위 관직이었다. 민회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원로원의 승인을 얻어 취임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선출 프로세스는 왕과 같았으나 종신제 였던 왕과 달리 임기가 1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재선은 허용되었고 연령제한은 40세 이상이었다. 2명의 집정관이 서로 생각이 다를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정책 실행을 위해서는 둘 다 동의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70년 당시 집정관이었던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각각 자신의 지지층 이익을 분명히 대변했다. 폼페이우스는 군인을 중심으로 한 일반 시민을, 크라수스는 급성장한 경제계의 이해를 대표했다. 특히 폼페이우스의 경우 나중에 원로원 체제의 수호신처럼 평가받기 때문에 그가 일반 시민을 대표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시민들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선의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로마 공화정에서는 모든 결정이 투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익적 정책결정조차 결국 표를 얻기 위한 선거 전략으로 귀결되기 쉬웠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집정관에 당선된 뒤 아래와 같은 연설을 하였다. 아마도 하얀색 토가를 걸치고 민회가 열리고 있는 포로 로마노의 연단에 섰을 것이다. 순백을 의미하는 ‘칸디드 Candid’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서구 언어에서는 입후보를 뜻하는 낱말 ‘Candidate’의 어원이다. 연설 내용은 요즘의 대통령선거 후보자 연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시민 여러분, 집정관들이 대부분 당선되기 전에는 겸손한 공복임을 과시해놓고, 일단 집정관으로 선출되면 당장 오만하고 게으른 자로 표변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집정관이나 법무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느냐 앉아 있지 않느냐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도 여러분에 의해 집정관으로 선출된 이상 그 책임을 완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절감하고 있습니다. 집정관이란 로마 최고의 관직인 동시에 군단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전투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국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를 잊어서는 안 되고, 병사 징집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병사는 시민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병사들이 모두 자진해서 병역에 종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게다가 반대파가 있는 가운데에서 일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책무를 수행하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나와 출신이 다른 분들은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조상들을 가졌고, 무슨 일이든 무조건 찬성해주는 친척들이 있고, 수많은 클리엔테스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후원자 들은 그들이 실패하는 경우에도 그들을 지켜줍니다. 반면에 내 경우, 나를 지켜줄 것은 나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뿐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는 데에는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책무를 완수하고 싶어하는 자에게는, 고생과 위험에 익숙한 자에게는, 위대한 조상의 명성도, 친척이나 클리엔테스들의 세력도 쓸데없는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동체에 더 공헌한 사람이 좀더 고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것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고명한 조상들의 초상도 없는 내가 로마 지도층에 들어간 것은 바로 어제 일입니다. 하지만 상속받은 명성을 더럽히기보다는 스스로 명성을 쌓아올리는 편이 더 나은 삶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그들의 지체 높은 혈통을 보여주는 눈부신 조상들의 초상에 대해. 나는 나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수많은 전투의 상처 자국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명성이나 지위는 고생과 위험을 견디면서 나 스스로 획득한 것임을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병사가 된 여러분은 모든 고난을 나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로마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행군할 때에도, 전투에 임해서도, 나는 여러분 곁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휘관인 동시에, 여러분과 똑같이 위험을 나누어 갖는 전우로서. 신들의 가호에 힘입어, 승리도 명예도 찬사도 모두 우리 것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초기 로마에서 왕은 세습이 아닌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성 확보는 로마가 시민 참여, 권력 견제 등 현대 민주주의 원리들을 두루 포섭하여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왕정 타도를 이끈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초대 집정관)는 왕을 추방한 직후에 포로 로마노에 모인 시민들에게 앞으로 어떤 인물도 로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의 집정관 선거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나갔다.

  • 출판기념회 : 규제회피 및 우회현상 사례

    송현기, “규제회피 및 우회현상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2014, p.56-6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정치후원금 기부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고 특히 법인.단체 기부금지 규제는 정치인의 원활한 정치후원금모금에 커다란 제한을 가져오게 되었다. 법인.단체 기부금지 규제로 인해 정치인은 쉽게 많은 돈을 모금할 수 있는 수단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정치인은 정치활동에 필요한 적정한 돈을 모금하기에 어려움을 겪게되었다. 이에 따라 다른 수단을 통한 모금을 꾀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출판기념회로, 학계와 언론에서 지적하는 대표적인 규제회피책이다.

    물론 2004년 법 개정 이후 바로 정치자금 확보 목적의 출판기념회가성행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정치 신인들이 자신을 알릴 방법이 없어 고육책으로 출판기념회를 여는 경우가 많았으며 도서를통해 경쟁자들과 차별화를 꾀함과 동시에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 확보를 위한 행사로 변질되었는데, 2006년 이후 언론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여 관련 기사를 조금씩 내놓기 시작하였다.12) 그리고 2010년 이후 방송과 신문에서는 출판기념회 관련 특집 기사를 내놓는 등 집중적으로 이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13)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도 출판기념회 문제의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여당 대표는 2014년 신년사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할 것”이라고 언급하였고 야당 역시 편법 모금에 악용되는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는 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1. 규제 수단

    정치인은 정치자금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다. 정치자금법은 포괄적 규제(원칙적 제한, 예외적 허용)를 그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강한 억제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자금을 모금하거나 기부함에 있어서 정치자금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방법 외의 방법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인 정치인은 후원회를 통한 모금만이 허용되고 이에 따라 후원금을 모금하여 정치활동에 사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규제 외에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정치자금법에 위반되게 된다. 만약 출판기념회 관련 자금이 정치자금에 해당된다면 정치자금법에 따라 모금 및 기부하여야 하고, 만약 정치자금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법과 무관하게 자유로이판매 및 구매가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출판기념회 관련 자금이 정치자금 성격을 띠고 있느냐가 중요하게 된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을 당비,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과 정당의 당헌·당규 등에서 정한 부대수입 그 밖에 정치활동을 위하여 정당(중앙당창당준비위원회를 포함한다), 공직선거에 의하여 당선된 자, 공직선거의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 후원회·정당의 간부 또는 유급사무직원 그 밖에 정치활동을 하는 자에게 제공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그밖의 물건과 그 자의 정치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규정하고 있다(정치자금법 제3조). 정치자금의 중요한 개념징표는 ‘정치활동’인데, 정치자금이 정치활동을 위하여(목적성) 정치활동을 하는 자(주체)에게 제공되는금전이므로 정치활동성 여부에 따라 정치자금인지 아닌지 여부가 갈릴것이다.

    현재는 출판기념회 관련 수익을 정치자금으로 보지 않고 있다. 정치활동과 관련이 없는 개인의 창작활동으로 인한 부산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14) 따라서 관련 수익은 회계보고를 하지 않을뿐더러 기부한도 역시지키지 않아도 된다. 일반적인 정치후원금은 내역공개, 영수증 발행, 회계보고 등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지만 출판기념회의 경우 이로부터자유롭다. 참석하여 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더라도 결혼식, 회갑연에 참석하여 의례적인 범위에서 축하금을 낼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로 문제가 없게 된다.15) 결국 출판기념회는 ‘선거일전 90일’이라는 공직선거법상규제만 준수한다면 정치자금법상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16) 이에 한 언론은 “2004년 초 정치자금법이 개정돼 후원금 연간 모금 한도가 절반으로 축소되고 규제도 대폭 강화된 이후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줄어든 돈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조선일보,2014년 1월 23일자).

    2. 사건의 개요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전에는 정치인이 정치후원금을 모금하는데 어려움이 크게 없었다. 법인.단체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개인이 하나의 후원회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 역시 현재의 4배인 2천만원이었으므로 소수의 후원자에게 고액의 후원을 받아 쉽게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4년 법 개정으로 이러한 쉬운 후원금 모금방법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고 다수의 후원자에게 소액 모금을 하는 방법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17) 이에 후원금을 모금하기가 예전보다 매우 어려워졌고 점차 다른 방법에 의한 모금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방법으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출판기념회이다.2012년 6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만 79건에달하고, 국회 이외의 장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와 지방단체장, 지방의원,후보자가 되려는 자가 실시한 출판기념회까지 합할 경우 그 수는 크게늘어날 것이다.18)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는 대부분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전후에 열리고지방단체장, 지방의원의 출판기념회는 공직선거법상 제한(선거일 전 90일 이내 금지)을 피하여 선거 전에 열린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는 상임위원회와 관련 있는 기업이나 단체 임직원, 공무원들이 주로 참석하여책 값을 내고 지방단체장, 지방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주로 지역내 회사와 단체, 지방공무원들이 참석하여 돈을 내고 책을 구입한다. 물론 명목상 해당 책 구입비는 개인의 저술활동의 결과물에 상응하는 금액과 추가로 축하의 의미를 담은 의례적인 축하금이다. 다만 형식은 그러하나 이돈이 대부분은 정치활동에 사용하고 있으므로 실질은 정치자금으로 보는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자금법 적용을 받아 회계보고를 하고 내역을 공개하고 영수증도 발행하여야 할 것이나 그런 법 제도를 모두 벗어나 있어 뇌물 창구 내지 로비 자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3. 규제회피 원인 분석

    (1) 규제회피 과정

    법적으로 국회의원은 연간 1억 5천만원(공직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가능)의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인쇄물, 시설물 등을 통해후원금 모금을 광고할 수 있다. 이것이 정치자금법에 정해진 정치후원금모금 관련 규제이다. 따라서 이를 준수하여 정치후원금을 모금해야 한다.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러한 규제를 벗어나 출판기념회라는 새로운 통로를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있다. 실제로 한 언론에서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초.재선의원의 경우 평균 1억에서 1억5천만원을, 3선 이상 중진의원은 평균 2억에서 3억까지 벌어야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보며 해당 모금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계보고 없이 선거자금으로 처리된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월간조선, 2012년 1월호). 정치자금법상 합법적인 정치후원금이 연간 1억5천만원임을 감안할 때 출판기념회를 열 경우 그 배가넘는 금액을 회계보고 없이 모금할 수 있으므로 많은 정치인들이 이러한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2) 규제회피 원인

    현실적으로 합법적 정치후원금 모금만으로 정치활동이 원활하고 문제가 없다면 굳이 규제를 회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출판기념회가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인이 느끼기에 현행연간 1억 5천만원의 후원금 모금한도와 후원금 모금방법 등이 충분하다면 규제를 준수하면서 그 안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여론의 비판에서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규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규제가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정치인들은 개최의 이유를 출판활동을 통한 자아성취와 개인의의사표현 자유 등으로 대외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자금의부족과 모금의 어려움이 실질적 이유이라는 것이 언론과 정치계의 공지의 사실이다. 2004년 이전 2억원이었던 후원금 모금한도가 1억5천만원으로 줄었고, 법인.단체의 기부금지로 인해 후원금 모금을 소액다수에 의존해야 하면서 모금활동 역시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를 열면 1천명에서 2천명이 알아서 찾아와 돈을 주고 가지만 후원금 모금광고를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해봐야 후원금을 기부하는 국민은 극소수에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 모금의 어려움과 더불어 정치자금의부족으로 인해 규제를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언론과 학계에서 비판하는 것도 출판기념회의 실제 목적이 정치자금을모금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국회의원 비서관이 토로하듯 “출판기념회의 핵심은 결국 돈”이고, 판매대금으로 포장된 축하금의 액수와 구체적 행방은 각 의원실에서도 극비사항에 부치고 있으나 대부분 선거자금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관계자의 예측이다.19) 정치후원금 부족으로 곤란을 겪던 정치인이 정치후원금 규제를 회피하여 새로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단을 찾게 되었고 출판기념회는 그러한 연유로 탄생되어 현재까지 많은 정치인들의 세 과시 및 선거자금 모금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당 대표까지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힐 정도 정치계에서도 어느 정도는 그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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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경향신문, 지방선거 겨냥 출판기념회 봇물, 2006-02-23 12면KBS, [뉴스타임]국회의원들 무더기 출판기념회 몸살, 2008-01-10한국경제, 돈과 권력의 은밀한 공생, 2009-04-03

    13) MBC,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시사매거진 2580, 2011-12-11월간조선, [뉴스추적] 편법 모금통로 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2012년 1월호문화일보, ‘불법정치자금’ 조장하는 출판기념회, 2012-07-24서울신문, [커버스토리] 그곳에 가면 ‘정치권 실세’가 보인다, 2013-12-21

    14) 출판기념회 판매 수입금은 정치자금에 해당되지 아니함(2009. 11. 26.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답).

    15) 단순히 저서의 출판을 축하하기 위하여 의례적인 범위 안에서 제공하는 축하금품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을 것임(2011. 12.20.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답).

    16) 공직선거법 제103조(각종집회 등의 제한) ⑤누구든지 선거일전 90일(선거일전 90일후에 실시사유가 확정된 보궐선거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와 관련 있는 저서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수 없다.

    17) 이는 법인.단체 기부금지와 후원금 모금한도 제한과도 밀접하겠지만 추가로 회계보고서 공개제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2004년 이전에는열람에 의한 공개제도만을 두었으나 2004년 개정으로 수입내역 공개시 후원회에 연간 120만원을 초과하여 기부한 자의 인적사항과 금액을 추가로공개하도록 하여 고액 기부자들이 이를 꺼리게 되었고 그 결과 고액 모금이 줄어들게 되었다.

    18) 2011년 한 해 동안 현직 국회의원이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황을 전수조사한결과 총 129회가 열렸으며 이 중 과반인 73회가 11월과 12월에 몰렸으며,이 때가 선거일 90일 전이었음을 감안하며 2014년 총선을 앞두고 막판 ‘수금’을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월간조선, 2012년 1월호>

    19) 월간조선, “편법 모금 통로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2012년 1월호. 익명의현직 비서관을 통해 알아본 결과 같은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 뉴욕시 순위투표제

    2021년, 뉴욕시는 시장 선거에 ‘순위투표제(Ranked-Choice Voting, RCV)’를 도입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한 명의 후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최대 다섯 명의 후보에게 선호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최종 당선을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승자의 법칙인 단순 다수 득표(FPTP)가 아닌 절대 과반의 지지를 확보해야만 했다. 

    전통적인 단순 다수제에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무조건 당선되었다. 만약 4명이 선거에 나와 26:25:25:24의 비율로 표를 받는다면 26% 지지를 받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수인 74%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후보가 승리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내포하기도 한다. 

    뉴욕시의 순위투표제 적용은 바로 이런 취지에서 출발했다. 방법은 단순하다. 1차 집계에서는 유권자들의 1순위 표만 먼저 계산하고, 거기서 과반(50%) 이상 득표자가 있으면 그 사람이 즉시 당선된다. 만약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최하위 득표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 표를 그 표의 다음 순위 후보에게 재할당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누군가 과반을 얻을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이러한 방식은 다양한 인종과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뉴욕과 같은 도시에서 보다 넓은 지지를 받는 리더를 뽑기 위한 시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뉴욕시장의 경우 유력 후보였던 에릭 아담스가 나머지 12명의 후보를 꺾고 승리했지만 그는 지난한 11차례의 순위 집계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번 선거가 선거제도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 중 하나는 캠페인의 변화였다. 후보자들은 자신의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기보다는 타 후보 지지자들의 2순위 이하 선택을 노리는 전략을 취했다. 따라서 극단적이거나 공격적인 언행은 줄어들었고 보다 포용적인 메시지 중심으로 캠페인 전략이 변화했다.

    아울러 유권자 입장에서도 ‘전략적 투표’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선 가능성만 따져 ‘차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선호하는 후보를 1순위로 찍을 수 있었고 다음으로 선호하는 후보를 2순위 이하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신의 표가 사표로 낭비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순위투표제가 만능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제도의 복잡성은 여전히 큰 장벽이 되고 있다. 뉴욕시 선관위는 시민들에게 사전 교육과 시뮬레이션을 제공했지만 일부 유권자들은 투표 방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상당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일부 유권자들은 상위 1~2명의 후보만을 선택해, 그들의 표가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순위투표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한계는 제도의 실패라기 보다는 제도를 둘러싼 시스템과 문화의 미성숙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정치의 양극화로 고민하는 상황에서 순위투표제는 양극화의 약간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긍정적 으로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선관위 신뢰, 시험대에 오르다

    최근 발표된 ‘2025~26 유권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4.7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국가기관 중 헌법재판소(5.2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여서 너무나도 다행이고 감사하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크게 좋아만 할 사안은 아닌 듯하다.

    선관위는 공직선거에 있어 심판자로서 정당 또는 후보자로부터 모두 존중과 신뢰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진보/보수 등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온도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기 유권자 패널조사에서도 이것이 극명하게 나타났는데, 민주당 지지층은 선관위에 대해 6.4점의 높은 신뢰도를 보였으나, 국민의힘 지지층은 2.6점으로 매우 낮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선거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선 결과에서 보듯이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뼈아픈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이 특정 팀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판정할 거이라는 생각 또는 확신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면 경기 중에도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결과에 쉽게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선관위에 적용하면 공직선거에 있어 선관위의 결정이나 행동이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에 대한 불복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법원과 검찰의 신뢰도가 3.8점, 3.2점이라고 해서 본인들의 역할을 못한다거나 결정이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많은 국민들이 그 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 기관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선관위 역시 마찬가지다. 절반이 신뢰를 못한다고 나머지 절반만 보고 갈 수 없을 것이고, 계속 지속되다 보면 불신이 전이(spill-over)되어 결과적으로 신뢰를 구축(crowd-out)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관위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도의 교과서 같은 말로는 극복이 어려울 것이다. 냉정하게 상황인식이 아직 덜되었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거야, 언젠가는 너희들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겠지” 정도의 막힌 태도로는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가장 중요한 명제는 “단일의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세상은 복수의 현실(multiple reality)이 존재하고 개인들은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양한 주관적 의미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사람들이 세상에 가진 의미, 해석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와 다른 생각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open-ended 로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그들의 배경과 맥락에 집중해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선관위 입장에서는 결국 불신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들어보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법은 어떻고 현실은 어떻고 같은 closed-ended 질문으로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설명보다는 경청, 논리보다는 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관위가 첫 직장이면서 오랜 기간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우리가 국민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정성, 투명성, 중립성 같은 레토릭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이 현실성 없는 내용이더라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지난하게 거침으로써 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겹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다. 다만 세상 모든 일은 원래 다 어렵다. 그러나 과거에 헤매던 사람의 발자국을 훗날 사람들은 길이라 칭하는 법이다.

  • 비상 계엄에 대한 소고

    작년 12. 3. 비상계엄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역사책에만 존재하던 ‘군대를 동원한 계엄’을 현실로 끌어온 점이 그랬고,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총칼로 점령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또 그랬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잘 만들어진 딥페이크 같았지만 그것은 아뿔싸 현실이었고, 누가 뒤에서 칼 들고 협박해서 그렇겠지 했지만 놀랍게도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백번양보해서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니 생각은 한 번 해볼 수 있다고 하자. 그래도 그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국가안보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규정이지 평온한 겨울밤에 느닷없이 사용하라고 준 건 아니었다.

    전쟁 방지하라고 국군통수권 줬더니 혼자만 배틀그라운드를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겠나. 헌법 규정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하라는 게 아니라 실제 상황이 일어나면 해야 하는 거라고 김철수 교수님 헌법책에 잘 쓰여 있었을 텐데 시험범위가 아니어서 빠뜨렸나 싶다.

    어쨌든 많은 국민들이 이게 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 TV를 봤을 것이다. 나 역시 가족들과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첫째를 막 재우려는 찰나에 계엄 소식을 들었다. 대통령은 상기된 얼굴로 당장이라도 국가 안위가 무너질 것처럼 열변을 토했지만, 80년대 땡전뉴스를 TV로 다시 보는 것 마냥 전혀 공감되지 않았고 마음만 무거워졌다.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미래의 새싹인 어린이(우리 아들)는 내 옆에서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북한이 무슨 도발이라도 했나 싶어 주요 외신을 찾아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나 싶어 베이징 휴민트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심지어 걔도 자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북한 김정은도 그날 저녁은 푹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밤사이 남한 비상계엄 소식에 무척이나 놀랐지 싶다.

    그러면 도대체 다 자는 밤에 대통령은 무슨 일에 있었길래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을까. 유부남 입장에서는 부부싸움이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까지 간 적은 있지만 와이프가 무서워 계엄 선포할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대통령의 임계점을 넘게 했을까.

    아마도 그 질문의 답은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만, 우리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당시 대국민 담화의 내용을 통해 그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저 내용 중에 어느 부분이 현재 대한민국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지 범부의 부족한 지식으로는 도저히 찾아내기가 어렵다. 아마 10년 가까이 사법고시를 준비한 사람이 있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회 = 괴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는데 과연 누구 괴물인지 반문하고 싶어지는 명문이다.

    물론 비상계엄의 위헌, 위법성에 대한 판단은 탄핵심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가 해줄 것이다. 내란죄와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담담하게 팝콘 먹으면서 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비상계엄의 영어표현은 Martial law 다. 군대를 동원해 행정부를 대체하고 사법 절차를 중단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군이 민간을 대체하여 대신 지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비상계엄은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경험했던 오랜 군부독재의 추억을, 우리 같은 87년 민주화 이후 세대들에게도 경험해 볼 것을 권하는 잘 짜인 타임슬립 드라마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 뭐 추억을 가진 이도 경험을 원하는 이도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말이다.

    우리 헌법 제77조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계엄으로 인한 조치의 범위를 행정부와 사법부에 한정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입법부인 국회가 계엄 해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법한 비상계엄을 위해서는 따로 국회에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밤 대통령은 국회를 군대와 경찰로 봉쇄하려 했고 심지어는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대통령은 선거관리위원회도 장악하려고 했다. 선관위는 행정기관도 사법기관도 아닌 독립적 헌법기관이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를 관리하는 기능 외에 헌법상 특별한 역할이 없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선관위를 장악하려 한 이유는 놀랍게도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도랑치고 가재 잡고, 님도 보도 뽕도 따고, 꿩 먹고 알 먹고, 마당 쓰고 엽전 줍는다지만, 비상계엄 차에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한다니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요즘 젊은 사람들 용어로, 켠 김에 왕까지, 뭐 그런 건가. 비상계엄이 절대반지도 아니고 뭐든 다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과 같은 엄청난 권한을 헌법이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준 것일까?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의 수가 너무 많으므로 직접 민주주의는 쉽지 않다. 그것은 아테네와 같은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현대 국가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를 통치할 권한을 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대표자는 법에 따라 권한행사에 제한을 받는다. 대통령이 권한을 마구잡이로 행사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비상계엄과 마찬가지로 국회에 견제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왜 국회에 그러한 권한을 줬을까? 국회 역시 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과 국회를 비교해 보자. 각자가 다른 선거이기는 하지만,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표자인 것은 둘 다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은 국가의 행정을 통할하는 권한을 가진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해소하기 위한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은 남용될 수도 부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것을 견제하여야 하는데 우리 헌법은 이 견제기능을 또 다른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에 주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을 보자.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정치권력 자체를 불신했다. 사람과 달리 권력은 선의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권력은 분립해야 하고 분립된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어야 개인의 생명, 재산, 자유가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액튼 경의 말이다. 액튼은 Lectures on Modern History(1906)라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변화는 빨랐으나 진보는 늦었던 400년간, 자유가 유지되고 확보되고 확대되어 마침내 이해된 것은 폭력의 지배와 항상 존재하는 악의 지배에 부득이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약자들의 결집된 노력 덕분이었다.”

    결과적으로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혼란상황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에 따라 잠시 안정화되었다. 비상계엄 선포 과정의 위헌, 위법성은 별론으로 하면, 비상계엄 해제 과정은 헌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여 안정적 균형상태로 되돌린 것이다. 이것이 미국 대통령제가 전제한 권력에 대한 불신, 그로 인한 견제와 균형일 것이다.

    여전히 비상계엄의 여파로 사회는 혼란스럽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거나 내각제를 실시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현재의 1987년 헌법이 지난 38년의 세월을 견뎌온 건 그만큼 한국 현실에 맞게 견제와 균형을 잘 이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도 사실상 지금의 헌법이 막아낸 것이다. 여소야대로 국정운영이 어렵다고는 하나 만약 여대야소였으면 지금도 사이렌 소리 들으면서 계엄치하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밝혀진 계획대로라면 몇몇 정치인과 선관위 직원들은 케이블 타이에 묶여 수방사 지하벙커에 갇힌 상태로 새해를 맞이했을 수도 있다.

    결국 핵심은 대통령과 국회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있는 듯 보인다. 4년 중임 대통령제 같은 대안은 뭔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로 파보면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 외에는 큰 장점도 단점도 보이지 않는다. 내각제도 바찬가지다. 우리 정치 맥락에서 얼마나 잘 작동할 것인지, 권력 간 견제는 충분히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없다면 역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1987년 현행 헌법 체계를 중심으로 기존에 발생한 문제점을 미세하게 핀포인트 조정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계엄조건을 명확히 하거나 해제조건을 완화하거나, 탄핵조건을 명확히 하거나 직무정지규정을 완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들을 조금씩 수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현재의 헌법으로 근 40년을 적응하여 왔으니 사회도 정치도 국민도 어느 정도 경로의존성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 방에 뭔가 가시적으로 큰 변화를 꾀하는 것보다 맥락을 고려하여 예쁘게 다듬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정치인 모두가 맞다고 하면 그건 틀린 거다’라는 여의도 격언이 있다. 현재 여야 정치인 모두가 현재의 헌법에 불만이 많은 걸 보면 아마도 이 아이가 여전히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퍼컷 같이 시원한 한 방보다는 꾸준한 쨉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비상계엄에 따른 혼란과 정신적 스트레스의 빠른 종식을 기원합니다.

  • 선관위, 선거범죄 조사 권한 

    작가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법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거나 완만하게 표현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공직선거법 제272조의2는 선거범죄 조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 제외) 위원ㆍ직원은 선거범죄에 관하여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거나, 후보자(경선후보자 포함)ㆍ예비후보자ㆍ선거사무장ㆍ선거연락소장 또는 선거사무원이 제기한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는 소명이 이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또는 현행범의 신고를 받은 경우에는 그 장소에 출입하여 관계인에 대하여 질문ㆍ조사를 하거나 관련서류 기타 조사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특히, 해당 조항의 제1항은 선거범죄의 효과적인 조사 및 단속을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및 직원의 장소출입권, 질문 및 조사권, 자료제출요구권의 법적근거 및 그 행사방법 등을 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은 1997년 11월 14일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일부 선거범죄에 대해 최초로 도입되었고, 2004년 3월 12일 법 개정을 통해 모든 선거범죄에 대한 증거물품 수거권과 출석 및 동행요구권이 인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본질적 기능인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위한 실효성 확보수단으로써 선거범죄 조사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보았다(헌법재판소 2019. 9. 26. 2016헌바381 결정).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범죄 조사의 법적 성격은 수사기관의 수사와는 구분되는 행정상 즉시강제 또는 행정조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장소출입권, 질문 및 조사권, 자료제출요구권과 관련한 주체 및 요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주체

    – 읍면동 선거관리위원회를 제외한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및 직원이다.

    2. 실체적 요건

    ㄱ. 선거범죄에 관하여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 여기서 “선거범죄”란 공직선거법 제16장 벌칙에 규정된 죄와 국민투표법 위반의 죄를 말한다. (공직선거법 제262조의2 제1항)

    – “선거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 함은 수사개시 요건으로서의 범죄의 혐의에 준하여 객관적 혐의일 것을 요하지는 않으나 (상당한 이유가 있는)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여야 한다. 이는 후보자 등의 범죄신고가 전제되지 않은 경우에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및 직원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 권한이 발동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ㄴ. 후보자(경선후보자 포함)ㆍ예비후보자ㆍ선거사무장ㆍ선거연락소장 또는 선거사무원이 제기한 그 범죄의 혐의가 있다는 소명이 이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 후보자 등이 선거범죄의 혐의를 제기하는 때에는 그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자료를 첨부하여 서면으로 하여야 하고, 각급 위원회 및 직원은 위 소명이 이유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해당 범죄혐의사실을 조사하여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하고 그 처분결과를 소명서를 제출한 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ㄷ. 현행범의 신고를 받은 경우

    – 여기서 “현행범”이라 함은 형사소송법 제211조에 규정된 범죄의 실행 중이거나 실행즉후인 자 또는 준현행범을 말한다.

    3. 절차적 요건

    – 각급선거관리위원회위원ㆍ직원이 위 규정에 따라 장소에 출입하거나 질문ㆍ조사 ㆍ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관계인에게 그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고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한다. 이때 증표는 위원신분증 또는 공무원증으로 갈음할 수 있다.

    – 만약 관계인이 해당 장소에 출입하고자 하는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및 직원에게 증표제시를 요구하지 않았다거나, 해당 장소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및 직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절차적 요건은 준수되어야 한다.

    4. 권한의 범위

    ㄱ. 장소출입권

    – 장소출입권은 관계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그 의사에 반하여 장소에 진입할 수 있는 강제적인 공무집행으로서 영장주의의 예외에 해당한다.

    – 다만, 관계인의 거부나 방해가 있을 경우 실력을 행사하여 강제로 출입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행정목적 달성을 위한 행정조사의 일환으로 보아 간접강제만이 가능하여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와 영장주의의 예외로서 관계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로 의견이 나뉜다. 다만, 강제출입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에 따르더라도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조리상 한계에 기속 될 것이다.

    ㄴ. 질문 및 조사권

    – 질문 및 조사권은 범죄혐의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질문하거나 추궁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이는 피조사자의 진술을 강제할 수 없는 헌법적 한계상 임의조사에 해당하므로 이에 불응하는 자에 대한 처벌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헌법 제12조 제2항 후문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진술거부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진술거부권을 침해하여 강요로 얻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아니한다.

    – 이와 관련하여 같은 조 제7항은 진술거부권의 고지를 규정하고 있다. “각급선거관리위원회 위원ㆍ직원이 피조사자에 대하여 질문ㆍ조사를 하는 경우 질문ㆍ조사를 하기 전에 피조사자에게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문답서에 이에 대한 답변을 기재하여야 한다.”

    – 질문 및 조사의 상대방이 되는 “관계인”이란 해당 혐의사실을 알거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과 그 혐의사실과 관련된 자료를 소지한 사람을 모두 포함하고, 당해 혐의의 혐의자 본인이라고 하여 이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고 대법원은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1. 7. 13. 선고 2001도16 판결).

    ㄷ. 자료제출요구권

    – 반드시 해당 장소에 출입한 경우에 한하여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장소출입과 별개로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 자료제출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실력행사를 통해 자료를 강제로 제출하도록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자료제출요구는 그 성질상 대상자의 자발적 협조를 전제로 할 뿐이고 물리적 강제력을 수반하지 아니하며 허위자료 제출 시 형사처벌을 함으로써 심리적, 간접적 강제수단을 통하여 조사권 행사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행정조사의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으며, 자료제출에 불응하는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여 간접적으로 제출을 강제하고 있는 취지에 비추어볼 때 실력행사를 통해 자료를 강제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실질상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인 압수에 해당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았다.

    – 자료제출요구에 응하지 아니하거나 허위의 자료를 제출한 경우에 대해 공직선거법은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형사절차에서는 피의자 등이 수사기관에게 허위 진술을 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증거를 조작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처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사절차와 형평에 맞지 않고 부당하게 피조사자의 방어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이효진, “공직선거법상 자료제출요구권과 진술거부권의 관계”, 법조 제73권 제2호)

    이상으로 선관위, 선거범죄조사와 관련한 장소출입권, 질문 및 조사권, 자료제출요구권의 주체 및 요건 설명으로 마치겠다.

  • 지구당 부활 논의 

    작가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법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거나 완만하게 표현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현행 정당법에는 지구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지구당이 정당 조직으로 존재하였지만 2004년 개정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005년 당원협의회라는 이름의 대체 조직이 도입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행 정당법은 “정당은 국회의원지역구 및 자치구ㆍ시ㆍ군, 읍ㆍ면ㆍ동별로 당원협의회를 둘 수 있다. 다만, 누구든지 시ㆍ도당 하부조직의 운영을 위하여 당원협의회 등의 사무소를 둘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당원협의회라는 조직은 있지만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그저 명목상의 하부 조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아울러, 정치자금법은 당원협의회의 후원금 모금도 인정하고 있지 않아서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원협의회 도입 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구당 부활 논의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당원협의회의 조직 및 역할, 기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당원협의회(지구당 폐지)는 현역 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에 형평성 문제, 당내 민주주의 문제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역 의원들은 후원회 명목으로 후원금은 물론 지역 사무실도 운영할 수 있지만 원외 인사들은 선거 기간이 아니면 사무실을 열고 후원금 모금 등 정치활동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사무실을 갖춘 지역조직이 없다 보니 당원들이 온라인을 통해 집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특정 세력이 전체를 좌우하는 양극의 당내 민주주의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과거 지구당이 있던 시절 정당법은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국회의원지역선거구를 단위로 하는 지구당으로 구성한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시·광역시·도에 당지부를, 구·시·군에 당연락소를 둘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시민들이 지구당 사무실을 통해 중앙당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고 후원금 모금을 통해 실질적인 운영도 가능했었다. 이에 따라 지구당은 유권자의 여론을 수렴하고 정치적 이념이 같은 사람을 결집시켜서 정치적 충원을 담당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으로서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과거 지구당 운영과정에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지구당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지구당 사무소를 상시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적·물적 조직과 많은 비용이 필요로 하였고(언론에 따르면 사무실 임차료와 인건비 등으로 월 1000만 원 이상의 운영비가 들어간다고 함), 따라서 지구당 운영 경비 조달을 위한 불법 정치자금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2002년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차떼기 등을 통해 지구당이 불법 정치자금 모으는 통로가 된 점 등이 지구당 폐지와 그 대안으로 당원협의회 제도를 도입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구당이 고비용 저효율 구조 및 불법적 운영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의 대안으로 등장한 당원협의회가 후원금 모금을 제한하고 사무실을 둘 수 없도록 제한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순리였다. 공간이 없으니 임차료, 인건비가 필요 없었고 따라서 운영하는데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았다. 물론 어쩌면 이러한 과도한 제한이 지구당 폐지 후 20여 년 동안 당원협의회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돈이 돌지 않으니 정치자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무실도 후원금도 없는 당원협의회가 최선의 대안인가 하면 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튼튼한 지역조직 없이 건강한 정당문화를 양성하는 것은 꽤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22대 국회에서 지구당 부활과 관련하여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거의 부패가 되살아나서 부활은 안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최초의 지구당 제도는 1962년 12월 31일 제정 정당법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에 관한 법령은 1946년 2월 23일 미군정청령 제55호 정당에 관한 규칙이었으며, 이승만 정권 내내 효력을 발휘하였다. 4.19 혁명 이후 탄생한 제2공화국의 제3차 개정헌법은 제13조에선 최초로 정당에 관한 규정을 두었으며, 1960년 10월 13일 정치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였다. 그러나 이 법률은 정당의 설립이나 활동, 조직에 대한 포괄적 규정을 담지 못했으며, 5.16 쿠데타와 함께 등장한 제3공화국에서야 정당법의 제정이 이루어졌다.

      정당법이 규정하고 있던 지구당은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지구당은 일반적으로 최고 의결기구로 지구당 당원대회를 두었으며, 집행기관으로 는 지구당을 대표하고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장을 두었다. 위원장과 함께 수명의 부위원장이 있었고 사무국을 두었다. 위원장 산하 계선조직으로는 윤면동 단위의 당무협의회가 있었고, 협의회마다 청년회, 여성회, 총무 등을 두었다. 경우에 따라 당무협의회장 산하 리.통 단위별 투표구를 담당하는 관리장을 두며 그 아래에 반책을 두었다. 그야말로 정교하고 방대한 조직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1962년 당시 지구당 제도는 여러모로 제3공화국 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먼저 박정희 정권은 전국 131개 지역선거구 중 3분의 1 이상, 약 44개의 지구당을 가져야만 정당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였다(제정 정당법 제25조). 각 지구당은 50인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하므로(제정 정당법 제27조) 최소 2,2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했다. 강력한 집권여당이거나 기득권에 기반을 둔 유력 야당이 아니라면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지구당 제도는 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신생 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 즉 신진 정치세력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려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구당 조직은 권력과 자원을 사실상 독점한 집권당이 막대한 재원을 흘려보내 유권자를 동원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후에 지구당 조직이 돈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고비용 정치의 상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요컨대 한국정치에서 지구당 조직은 유권자의 이익결집에 따라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배 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조직화된 것이다. 실제로 이 점이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지구당 폐지 주장의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

    – 조한상, “정당민주주의에 입각한 지구당 부활론 검토” 중 일부 발췌

    2004년 헌법재판소는 지구당 폐지와 관련하여 “정당의 핵심적 기능이 국민의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인 까닭에, 정당이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 기능은 원활히 수행될 것이고, 또한 국민들이나 평당원의 의사를 잘 반영하면 할수록 정당조직과 활동의 민주성은 고양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지구당이나 당연락소는 정당의 핵심적 기능을 민주적으로 수행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i) 지구당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 나라에서 지구당이 모든 선거구에 설립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사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점, (ii) 지구당이 선거기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선거가 끝난 후에는 그 활동이 약화되거나 미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 많은 나라들의 운영실태이지만, 정당은 의연하게 그 기능을 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점, (iii)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교통과 통신(특히, 인터넷) 및 대중매체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지구당이 국민과 정당을 잇는 통로로서 가지는 기능 및 의미가 상당 부분 완화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지구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여 핵심적 기능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라고 하여 지구당 설립 금지가 정당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는 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헌재 2004. 12. 16. 2004헌마456 결정)

    하지만 이후 당원협의회 운영이 한계를 보이고 지구당 부활 요구가 있자,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구당 부활이 포함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제안이유에 대해 선관위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구당을 폐지한 후 당원협의회를 도입했으나 현역의원과 비현역 정치인 간 정치적 형평성 문제, 당원협의회 사무소의 편법 운영에 따른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선거가 실시되는 때마다 정당 선거사무소를 둘 수 있어 규제의 실익도 크지 않다”라고 밝히며, “정당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헌법에 비춰도 지역차원의 정당조직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엄격한 선거법 덕분으로 탈법적인 자금 수요가 거의 사라졌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생활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전향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2021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의견을 냈지만, 입법화에는 실패하여 당원협의회 체제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제22대 국회 개원 후 지구당 부활 관련 논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발의한 정당법 개정안은 모든 선거구별로 1개의 지구당 설치를 허용하고 유급직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법적근거를 담았다. 아울러 원외위원장도 현역 국회의원들처럼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조항도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여러 논의를 통해 풀뿌리민주주의도 회복하고 과거 지구당 폐해도 막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스웨덴 재외선거 우편투표 도입

  • 정당추천위원 역할

  • 투표소내 질서유지